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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친구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 친구 말로는 내가 가장 많이 말린 사람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역시 밥벌이라면 도전보다 안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대학 시절 문화예술 일을 하면서 꿈, 열정과 같은 단어에 대해 몹시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으므로 나에게 스타트업이란 그저 열정이라는 허황된 감정에 매몰되어 자신이 무엇이나 되는 줄 아는 인간들의 집단이었다. (이러한 편협한 생각은 과거형임을 밝혀둔다.)

그런 내가 스타트업을 갔다.

살려면 어디든 가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지인이 추천한 -업계에선 이름도 있고 시리즈 A 투자까지 받은- 스타트업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회사가 망했습니다.

웃는 자가 일류다. 울지마 바보야.

망했다는 것은 엄살을 보탠 것이고(현재기준으론 리터럴리 망했다), 입사 6개월 만에 구조조정으로 80% 이상의 인원이 퇴사하게 되었다. 스타트업 생태를 전혀 모른 채 발을 들여 놓았던 나에겐 흥미로운 경험이자 배움으로 다가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X됐다'를 외쳤지만 난 '오... 방심하면 X되는게 스타트업이구나' 하는 신선한 기분이랄까. 의외로 태연한 기분에 스스로도 매우 놀랐었고, 그 이후로도 혼자서 어떻게든 해내 만 1년을 꼬박 채워 일하게 되었다. 현재는 이직을 준비 중이고 1년을 다녀 본 소회를 소소하게 풀어볼까 한다.(이 글을 수정해서 발행하기로 마음먹은 이 시점에선 이미 이직해버렸다)

1. 스타트업은 이런 곳이다.

흔히 스타트업에 대한 외부의 인식은 아래와 같다.

- 신선한 아이디어로 중무장 한 젊은이들

- 야근과 크런치 모드까지 불사하는 열정

- 가벼운 무게만큼 빠른 업무 속도

물론, 이런 스타트업도 존재한다. 실제로 몇날 며칠을 집에 들어가지 못하며 일하는 사람도 봤고, 나름 성질 급하다는 나도 따라가다가 지칠 정도로 속도를 내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마냥 청과물 시장처럼 싱싱하고 풋풋한 곳은 아니다.

내가 다니며 느낀 부정적 관점에서의 스타트업은 이렇다. (다른 이들과 대화하며 일정 부분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한 부분)

- 신선한지 쉬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많긴 많은 말말말

- 요즘 누가 돈도 안주는데 야근하나요?

- 사기꾼인지 대표인지

의견 말하는 건 쉽다. 그 의견을 행동으로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회의만 두세시간씩 하면서 아이디어와 생각은 무수히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무엇을 누가 어떻게 언제까지 할건데"가 부재한 상태로 끝난다. 생각 외로 스타트업은 속도가 느리다. 가장 아마추어같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는 꿈을 꾸지 않는다, 현실을 만든다' 그 말을 복기 할 수 있었다.

야근? EO나 여러 채널을 보면 야근을 불사하는 스타트업 젊은이들이 제법 많은 것 같은데, 실제론 요즘 시대는 다르다며 칼퇴를 고집하는 인력들도 많고 이 들이 전체 분위기를 저해 시키는 행동을 많이 한다. 워라밸 지키고 싶었으면 스타트업이 아니라 시간 딱딱 맞춰 컴퓨터 오프해주는 대기업이나 가지그랬다. 대기업 갈 능력도 없으면서 이제 사업 일으켜야하는 업장에 와서 열심히 하면 바보된다는 말로 분위기 해치는 사람들- 정말 꽤 많다.

사실 스타트업에선 대표가 가장 중요하다.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서 북극성을 찾아내 가리키고 그 별을 따라가자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대표가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디 비즈니스 모임이나 인터뷰에선 말 뻔드르르 하게 하면서 투자 받아내려고나 하고, 내부에선 청사진 하나 없이 투자금으로 아무 생각 없이 돈이나 쓰는 대표들 많다. 최근 몇년간 풀렸던 돈으로 블러핑 된 회사들 최근 다 쓰러져가는 것이 바로 이 말을 반증한다.

2. 스타트업 올 사람 안 올 사람 따로 있다.

오면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사람이 있다.

- 매사 완벽하게 계획대로 해야하는 사람

- 관계를 통해 사내 입지를 구축하는 사람

아마 이젠 스타트업에 오는 것을 상당히 사리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이 크고, 공포심으로 위축되어있는 상황에선 안정적인 곳으로 취업을 더 희망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스타트업을 고려해본다면, 스타트업은 안 가는게 좋을 사람의 유형이 있다.

완벽주의자. 

대기업도 막상 들어가보면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회사가 많다. 근데 스타트업은 없다 그냥. 아무 것도 없다.

그 말은 내가 처음부터 예쁘게 일을 배우고 시작 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삽으로 땅파서 깊고 튼튼한 우물 만들고 싶은데, 삽이 없다? 회사도 삽 사줄 돈이 없다? 그럼 일 못 한다고 생각할게 아니고 뗀석기로 파서 못생기고 작은 우물이라도 만들어야한다. 심지어 우물 파다가 여기 물 안나올 것 같으면 바로 때려치고 어디서 물 끌어올 수 있도록 생각과 행동의 전환을 해야한다. 덜 완벽주의자가 와야지 일하다 속은 덜 불편할 것이다.

물론 완벽주의자가 스타트업에서 진짜 1부터 100까지 끌어안고 다 하는 경우도 봤다. 나는 그걸 미친놈이라고 부른다. 이런 놈들은 성공하는 놈들이니까 나따위 블로그에 들어와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는다.

스타트업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정치인.

정치질 하는 인간들은 어딜가나 극혐이지만 안그래도 조직이 작아서 대표 때문에 좌지우지되는 요소가 많은 스타트업에서 사내 정치질까지 낀다? 절레절레. 뭐 줏어먹을게 있다고 스타트업에서 사내정치질이냐 하겠지만 이거 버릇이라서 어디가서 하던 가닥 그대로 나온다. 일 안하고 사람들하고 면담하고 C레벨 놀이 하는 것들이랑 술마시면서 자기 라인 만들고, 일 할때 무조건 사람써서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대기업에선 이렇게 하는 것도 하나의 생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ㅎ 어차피 이런 놈들 한두명 있어봤자 대기업은 안망한다. 근데 스타트업은 망한다. 훠이 썩 꺼지거라.

3. 스타트업 솎아내기

그럼에도 갈만 한데? 라고 생각한다면 스타트업을 솎아서 가야겠다.

가장 중요한 한 요소만 짚으면 '대표'다.

스타트업은 누가 제일 중요하냐 물어보면 단연 대표다. 구성원 중 제일 철학이 뚜렷해야하고, 제일 똑똑해야 한다. 대표의 역량을 입사 전 대략 가늠할 만한 것들이 있다. 

학벌. 학벌이란 말에 의아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적으로 판단할 factor' 중 하나를 이야기 해보자면 학벌이란거다. 지능이나 태도같은 부분에서도 차이 날 수 있지만 학벌로 쌓아온 경력과 그 커뮤니티 또한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 학벌 좋은 대표란 바닥에서 시작할 때 여러가지로 좋은 버프를 받는 사람이란 정도로 인식하면 좋을 것 같다. (내 학벌은 뭐.. 어쩌라구^^ 대표랑 일개 직원이랑 같냐^^ 라며^^)

엑싯 경험. 엑싯 경험은 말해 무엇하나 싶을 정도로 당연한 것 같은데, 스타트업은 혁신을 일으키고자하는 집단 이전에 피고용인의 봉급을 지불 할 의무가 있는 사기업체이다. 즉 엑싯 경험은 성공할 회사냐는 판단을 하기 위한 요인이 아니라, 땡전 한 푼 못 받고 열정만 불태우는 호구가 되지 않게 할 만한 경험이란 것이다. 게다가 엑싯 경력이 있다면 투자도 보다 쉽다.

대표 인터뷰와 이력.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 대표라면 인터뷰나 이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혹시 이런 인터뷰 자료가 없다면 대표 면접 시 BM와 청사진, 조직 문화와 보상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을 물어보아야만 한다. 물론 사기꾼이 워낙 많아서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는 대표들도 많지만 인터뷰를 찾아보고 대화를 몇 번 하다보면 이 사람이 '진짜'인지 아닌지 자신만의 판단이 선다.

나의 1년 간 망한 회사 붙잡고 아등바등 했던 개인적인 감상과,

6개월 간 왠지 망하진 않을 것 같은 회사 믿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개인적인 감상이다.

ps. 스톡옵션 같은 사탕발림에 절대 넘어가지마라. 배달의 민족, 마켓컬리, 당근마켓 - 이 회사 중에 모르는 회사 있는가? 없다면 이 회사 중에 상장한 회사 있는가? 상장 되기 전까지 스톡옵션은 아무 쓸모짝에도 없는 공수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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